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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사랑> (2023) - 임선애/ 글.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4-02-01 52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세기말의 사랑> (2023) - 감독 임선애/ 글.조현철


캐릭터의 대조와 아기자기한 구성이 주는 재미



 1999년 12월 말, 20세기의 끝자락에 도달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사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관성에 실려 전개될 내일이겠지만, 한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 놓여있다는 생각에 괜히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상당할 것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고, 다시 못 올 것들에 대한 상실이 우울의 감정을 불러대기도 할 것이었다. 일부의 사람들에겐 이 부정적 인식과 서글픈 감정이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인류가 무려 지난 천 년이나 지내어들 왔으니, 무언가가 나서서 총체적인 정리를 할 것이고, 이 국면에서 결정적인 심판의 대상에 들지 말 것이며, 새로운 천 년을 제대로 누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었다. 이때 상당수의 사람은 바로 이 휴거의 논리에 이끌려, 나름 탄탄한 대비들을 하고도 있었단다.

 ‘면상’ 기준으로 볼 때 ‘세기말’에 해당한다는 김 과장은, 그 우중충한 인상과 도드라지지 못한 외모로, 직장에서도 은따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 얻게 된 팔과 등의 요란한 화상자국을 이어지고 살면서도, 그 원인 제공자에 해당하는 큰어머니를 모시며 고통스러운 치매 수발도 얌전히 수행해낸다. 누구의 고통 혹은 불편함도 예상하여 돌보며, 어떤 사람의 도발이나 요구에도 소심히 순응하는 그녀. 이 ‘미스 세기말’의 내면에도 강력한 추동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 같은 직장의 ‘구기사’에 대한 마음을 그저 수줍게만 키워오던 그녀가 세기말의 대목에서 가지는 소망은, 나름 무척 간절한 것이었다. 모든 게 소멸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마지막 시간을 채울 행동은 다름 아닌, ‘구기사님과 20세기의 끝 순간을 둘만 함께 보내보는 것’이었다. ‘세기말녀’의 이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그녀의 이 사랑엔, 사실 간단치 않은 ‘선불’이 요구되고 있었다. 구기사는 회사의 공금을 횡령 중이었고, 경리를 보던 김과장은 이를 묵인하며 메우려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새 그녀의 일상이 그리도 고단했던 건, 바로 이 이유였던 것이고, 수입을 올리려 온통 정신이 팔린 우리의 ‘세기말녀’는 TV에서 애국가 방송이 나올 때까지 재봉틀을 돌리다, 꾸벅꾸벅 졸다가 손가락 부상을 자초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으니 말이다. 횡령의 정황은 이내 수사당국의 관심을 끌게 되고, 구기사의 체포 소식을 전해주는 경찰에게 그녀는 커다란 놀라움을 전한다. “자수 아니었어요?”라고 말하면서. 먼저 공모를 자백해버린 그녀에게, 경찰이 다시 들려주는 구기사의 횡령금 사용처는, 그녀를 더욱 ‘세기말스럽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바로 그 많은 돈은, 구기사의 아내가 값비싼 명품들을 구매하는데 쓰였다고…. 그런데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를 나오는 그녀를 맞이하는 사람은, 또 다른 ‘그녀’였다. 바로 구기사의 아내란다. 동승한 운전자에게 자기 얼굴의 선글라스를 벗겨달라고 명령하는 그녀는,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죄책감과 머뭇거림을 깨끗이 정리한 말투와 표정으로, 그녀는 ‘세기말녀’의 어이없었던 행태를 질타하면서도, 구기사가 횡령한 금액을 나중에라도 갚겠다고 약속한다. 이를 뿌리치고 숨듯이 도주하는 ‘세기말녀’의 손에, 그녀는 자신의 명함이 주어지게 한다.

 여기까지도 아직은 영화의 초반이란다. 화면을 숨 가쁘게 채워대는 캐릭터와 사건의 부피와 변화성은, 만만치 않은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은 영화의 종반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어서 이 엉뚱한 두 여성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인물이 끼워지고 맞춰지며, 몇 가지 작은 소동들이 전개되고, 그러는 사이 그들 간에는 친밀한 관계성이 형성되고, 각각은 보다 ‘인간적인’ 성격을 형성해내게 된다. 사실 <세기말의 사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캐릭터이다. 수용, 순응, 위축, 돌봄, 이해 등 ‘소극적 사양지심’ 행태를 보이는 ‘세기말녀’와 직면, 대립, 비꼼, 일방성 등 ‘공격적 집중 성향’을 보이는 ‘장애녀’가 만드는 조합은, 일정한 불균형을 이루면서도,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두 선명히 대조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표정과 대사가 스크린을 채우는 사이, 관객은 그 부조리성과 비교성에 따른 유머와 재미를 함께 느끼게 된다. 그런데 주로 ‘세기말녀’의 상시적 조력을 이용해 대면서 ‘장애녀‘가 결국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관용’이었고, 두 사람은 맨드라미의 꽃말을 주제로 특히 ‘세기말’녀의 ‘구석기’ 기사에 대한 사랑이 ‘치정’이 아니고 ‘지치지 않는 사랑’임을 이해하고자 한다. 다만,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특성을 보이고, 플롯 상의 많은 요소는 작위적으로 제시되는 사건들과 상황들에 의해 직조되고 있다. <세기말의 사랑>에서 아기자기한 구성이 주는 재미와 인물과 대사가 가지는 독특한 임팩트가 다소 표피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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