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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2023) - 네오 소라/ 글.우란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4-01-16 81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2023) - 감독 네오 소라/ 글.우란


예술은 길고,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첫인상은 ‘무성 영화 같다’였다. 피아노 선율이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시선은 류이치 사카모토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특히 카메라가 그의 얼굴과 정교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비출 때면 더욱 들리지 않았다. 듣고 있었기에 들리지 않았다. 그의 연주에 빠져들수록 영화는 숨죽였고 그 결과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누구나 빠져들고 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인물의 표정과 행동이 유일한 언어가 되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무성 영화처럼, 류이치 사카모토의 언어는 본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마침내 관객의 ‘무엇’이 되었다.

 무엇, 시작은 류이치 사카모토란 단 한 사람의 얘기다. 그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은 영화 끝에 다다른 관객에게 각자 보관해 왔던 ‘나’만의 사적인 기억을 들추게 한다.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 기꺼이 따르고 마는 이 감정적 동요는 그의 내밀하고 친밀한 연주와 계속 함께 흘러간다. 물론 화면 속엔 피아노와 연주자 그리고 악보가 전부다. 드라마 장르가 가진 기승전결 형식의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영시간의 99%가 그의 연주로 채워져 있고, 대사 분량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열렬한 팬이 아닌 이상 20곡 전부를 알기란 쉽지 않은데, 자막(곡명)도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관객을 불편하게 하거나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화의 일반적인 요소를 과감히 생략해 조금 낯설 뿐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작곡가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곡보다,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행위에 있다.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는 그의 라스트 댄스와 곡과 곡 사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짧지만 버릴 수 없는 공백. 그것은 피아노 연주란, 눈에 보이는 외적인 행위가 아닌 비워진 화면 속에서 파생된 내적 파동의 결과물이다. 듣고 있었기에 들리지 않아, 직접 느낄 수밖에 없는 진동은 견고하고 세심할수록 더 깊고, 더 격렬하게 퍼지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에 닿는다.

 공백과 진동. 내겐 바람의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인 '풍 미술관'으로 걸어 들어간 순간과 이어졌다. 벽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햇빛. 마치 한 줄기 바람이 미세하게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와 커튼을 잔잔하게 펄럭이는 장면을 오랫동안 보는 것 같았다. 계속 바라보며 간직하고 싶다가, 일순간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솔직해지고 싶은, 신비롭고도 한편으론 무척이나 고마운 순간. 그의 연주에서 풍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흐름은 내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내게 아주 긴 내적 환호를 불러일으켰으며, 피아노 연주와 건축물에 담긴 그들만의 이야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선에서 예술이란 공통 언어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예술은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지점에서 탄생한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순식간에 불특정 다수의 심적 공간에 스며든다. 예술의 진정한 힘은 개인의 예술이 무수히 많은 개인에게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며, 영향을 받았던 개인들이 각자 ‘자기 자신’이란 공간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문을 발견하게 하는 것에 있다. 나를 온전히 바라보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어루만지게 한다. 나아가 그 힘으로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 내도록 격려하기도 한다. 어쩌면,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네오 소라 감독이 아버지가 아닌 예술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카메라에 담는 순간, 첫 관객이 되어 빚어낸 예술 작품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예술이 또 다른 개인의 예술로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힘. 
더욱더 많은 이가 개인의 예술에 지극히 사적으로 동요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의 예술은 길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 관객동아리 씨네몽, 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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