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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베프> (1996) - 올리비에 아사야스/ 글.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3-02-17 137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이마 베프> (1996) -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영화란 무엇인가?’의 출제문에 대한 다소 조악한 답안지 




 여기 성과를 뽐내온 한 프랑스 영화 감독이 있다. 그의 최근 프로젝트는 상당히 특이하다. 수십 년 전의 고전 흑백 무성영화 <뱀파이어>를 리메이크한단다. 독창적 스타일로 소문 난 작가로서, 매우 이례적이다. 더욱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수입한단다. 전성기를 누리던 홍콩 영화계의 스타 ‘장만옥’을 불러서 그녀의 모던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매력을, 영화사에서 넘사벽의 위치로 공고해져 있는 주인공 ‘이마 베프’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현지 영화의 제작 현장은 혼란과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다. 라텍스 뱀파이어 슈트를 배우에게 입히는 촬영 스태프의 손길은 어눌하기만 하고, 의상 담당과 진행 담당은 아무 때에나 모욕주기와 공격하기의 언사를 주고받으며 상호 간에 질투를 뿜어댄다. 강렬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감독의 변덕스러운 지휘에, 그의 종말을 기대하며 불신하는 스태프와 충직한 신뢰로 옹호하는 스태프 간 불길한 대화가 난무한다. 

 이 이국적인 업무 맥락에서 영어만을 말하는 장만옥은 생면부지의 상황에서 모두가 괴팍하다고 말하는 성격을 가진 감독의 호의를 그저 접하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우아한 미소와 상큼한 미모를 결코 지워내지 못하는 균형 잡힌 몸매의 이 동양 여배우에게 어두운 뱀파이어 제복을 입히는 순간, 그 미끈한 매혹이 스크린을 달구어댄다. 이에 매혹된 의상 담당의 달달한 관심에 대해, 장만옥은 동성애적 편향에 대한 편견을 특별히 드러냄 없이, 이 사랑의 시선을 그저 담담한 미소로 비켜 가버린다.

 온갖 소동의 와중에 어찌어찌 촬영은 진행되고, 중간편집본의 시사 후 진짜 소동이 전개된다. 시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감독은 실패를 선언하며 뛰쳐나가 버린다.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장면의 연속을 만들어낸 것뿐이라 자책하며, 신경쇠약적인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그는 분명 ‘창작의 고통’이라는 회오리 속에 있을 것이다. 급기야는 가정 폭력의 사단을 만들어내는 감독은, 촬영에서 손을 떼도록 압력을 받는 상황에 놓인다. 이에 새로 영입된다고 하는 다른 감독은 이마 베프의 ‘자랑스러운’ 정통성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동양인 여배우를 지목한다. 그런데, 그 사이 새로이 발견되었다 하는 이전 감독의 편집본이 제시되는데, 이제 여기서 활약하는 장만옥의 이바 베프는 어떤 본질을 제시하게 될 것인가….

 <이마 베프>에서 기승전결의 흡입력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야심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어떤 제한된 시공간의 특정한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영화’ 혹은 ‘영화를 만들기’의 일반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자신의 촬영본에 대해 ‘본질 타령’을 하며 자책하는 감독에게, 장만옥은 영화는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답한다. 이국적 히로인인 그녀에게는 매우 특별할 현지 감독과의 영화제작 경험에 대해 인터뷰하는 기자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만 알아보는 영화를 만드느라 정부 보조금을 다 써버린다.’라고 감독을 성토한다. 

  ‘영화란 무엇인가?’ 비록 스스로 완성도 높은 답안지를 내밀지는 결코 못 하지만, <이마 베프>는 이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묵직한 유효함으로, 그러나 경쾌한 에피소드들을 선사하며, 100분 내내 관객에게 그 풀이에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C+를 각오하고 작성된 답안의 한 예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제출될 수 있으리라.
“빛과 소리를 통하여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조악한 노력의 과정, 그러나 때로 불 예측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건져낼 수도 있는 작업, 마치 <이마 베프> 마지막 장면의 편집본처럼…”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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