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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 (1983) - 에드워드 양/ 글. 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2-02-02 222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해탄적일천> (1983) - 감독 에드워드 양


자연스러운 사실감과 감각적 유려함으로 다듬어진 대서사



 
 13년 만에 귀국하여 유명 피아니스트로서 공연을 위해 타이페이를 찾게 되는 ‘웨이칭’에게 짧은 메시지가 도착한다. ‘자리’로부터 라는 끝말을 한 메모였다. 예정된 언론 인터뷰를 물리고 자신과 긴밀히 해후하게 된 웨이칭에게, 자리는 자신만의 길고도 복잡했던 인생살이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지방의 고풍스러운 일본식 저택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집안의 엄격한 아버지의 명령으로 자리의 오빠가 귀한 집안의 다른 여자와 정혼 하게 되자, 연인이었던 웨이칭은 해외로 유학길에 오른 터였다. 오빠의 실연과 상심을 목격한 자리는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아버지 권위의 폭압에 야반도주라는 적극적 회피행위로 대응한다. 가정이라는 사랑과 안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아무런 우호적 배경 없이 오직 사랑하는 남자애만 의존하여 청춘을 보내게 된 여인의 삶은, 과연 어떤 굴곡과 의미로 구성되는 것이었을까?

 <해탄적일천>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에게 진부하리만큼 친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연도인 1983년 당시로부터도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에 대한 회고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우리와 비슷한 현대사를 겪은 대만의 전후 사회상을 퍽 많이 담고 있던 영화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산업화를 헤쳐 왔던 우리 사회의 근대화적 전환 경험과도 공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만큼 영화는 시대를 돌아보며 우리네 삶의 양상을 반성하며 음미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해탄적일천>의 영화적 야심은 단지 지난 시대에 대한 정돈된 회고에 머무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 이를 전하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 그리고 사건의 발단과 진행을 이끄는 서사에 있어, 무척이나 단정한 절제와 자연적 사실성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회고 조의 느릿한 템포로 전달되는 각 공간 특성의 감각적 구성과 배열은, 이 2시간 40분의 ‘영상 모노레일’의 탑승을, 상쾌한 주행 경험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결과로 영화는 다큐멘터리 적 진정성을 갖추면서도, 감각적인 유려함이 넘치는 대서사를 빚어내게 되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80년대 ‘대만 뉴 웨이브’의 한 탁월한 실천으로서 시대를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진중한 주제 의식과 세련된 스타일로 <해탄적일천>이 시사하는 의미는, 이보다 더욱 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사랑 없이 결혼한 자리의 오빠가 영위했던 삶은 불행하기만 한 것이었을까? 자리가 과감하게 쟁취해내었던 사랑은 온전하게 무르익어간 것이었을까? 마지막 장면, 자리 남편의 실종지로 추정되는 해변의 하늘(해탄적일천)에 정처 없이 떠도는 흰 구름을 통해, 영화는 속삭이는 듯하다. 그러게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그러기에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야”라고.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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