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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에 탄 소녀> (2021) - 박이웅/ 글. 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2-04-15 253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불도저에 탄 소녀> (2021) - 감독 박이웅


기득권 탐욕의 단단한 외피를 부수는 불도저의 단순한 미덕




 이제 열아홉인 소녀를 세워놓고 선고하는 여판사의 목소리는 서늘한 짜증으로 가득하다. 이를 뻣뻣한 자세로 ‘들어주는’ 소녀의 눈에는 세상을 향한 불만과 저항이 넘친다. 그녀는 이 반동의 에너지를 맹목적으로 발산한다, 아니 해야 한다. 마치 깊은 숲속에 갇혀 길 잃은 등산객처럼, 그녀는 인생 행로의 초입부를 빽빽이 들어선 나뭇가지들을 걸리는 대로 잘라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답답한 밀림의 여러 장애물 중에서도 가장 장대한 규모로 길을 막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다. 

 경마에 탕진하고 주모 없이 가게(중국음식점)를 운영하며, 홀몸으로 어린 아들과 청소년기 딸을 무기력하게 관리해오던 아비는, 어느 날 중대 결심을 하고 대형 사고를 쳐대고 만다. 그는 남의 차를 빼앗아 질주하다 부딪쳐 뇌사상태에 놓여 있게 되었단다. 그 과정에서 행인 두 사람을 치어버려 피해자는 병원행이란다. 이 왠수가 남겨놓은 건 막대한 병원비와 피해 보상금이 될 거라는 전망에, 그녀는 이 환자의 보호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집으로 향한다. 돌아와 보니 이번엔 급여를 받지 못한 종업원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 집에서 나가’라는 재촉에 시달리게 된다. 가히 악몽이라 할만한 상황에서, 이 취약한 소녀가 어린 동생과 함께 취할 방법은 과연 무엇일 수 있을까? 

 이제 그 ‘무대뽀’의 주먹질과 씩씩거림을 잠시 뒤로 하고, 그녀는 침착한 눈으로 주변을 점검하면서 이 모든 황당한 갑작스러운 결과를 초래한 원인과 과정을 파악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흙수저 배경의 미숙한 영혼이 결국 부딪히게 되는 것은, 단단한 기득권의 껍질 속에 꿈틀거리고 있던 타인의 욕망이었다. 이것을 우직한 단선형의 질주로 들이받아 본 결과는, 또 다른 좌절과 고통이었다. 이제 우리네 주변의 ‘선망받는 탐욕 덩어리’가 두르고 있는, 이 세련되고 견고한 보호막을 뚫는 방법은 오직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 소녀가 불도저에 올라타게 된 연유이란다 절정의 통렬함이 압도적으로 스쳐 지나간 자리에, 스산하게 남는 감상은 진한 씁쓸함이었다. 그만큼 영화가 전하는 주인공의 사정이, 우리 시대 구조적 불균형의 디테일에 대해 유지하는 싱크로율이 높은 것이겠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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