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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그리스> (2020) - 마이클 윈터바텀 / 글. 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1-07-14 240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
<트립 투 그리스> (2020) -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지중해 산 풍광·역사와 할리우드 산 추억거리를 재료로 한 지적 미식의 체험




 ‘롭’과 ‘스티브’는 터키의 아소스에서 반갑게 재회한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는 여정을 ‘호머’가 묘사한 대로 따라가 보자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이제 두 절친은 그리스 이타카까지 용맹하고 지혜로웠던 영웅이 겪은 십 년 동안의 고난과 역경을 일주일 동안 지적인 유희로 가득한 소풍으로 바꿔 체험해볼 것이다. 

 선사시대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법한 해안 풍경의 아름다움과 고기와 생선 및 채소에 대한 칼과 불의 현란한 놀림이 만드는 최고 셰프의 풍미,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되어버린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 이후, 총 네 편의 ‘트립 투’ 시리즈가 있음) 롭과 스티브의 ‘씨팅 개그’가 만드는 유머러스한 노스텔지아로 무장한 채! 그런데 이 모두는 바로 관객이 얻을 즐거움이 될 것이었다. 

 사실 이 만담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두 번째 밤에 머무는 곳 레스보스 항에서 그들은, 이곳이 고대 그리스 여류 시인 사포가 여성 동성애를 찬양하며 살았던 곳으로 ‘레즈비언’의 어원이 되고 있음을 상기한다. 그리고 결코 찾지 못할 ‘레즈비언 호텔’에서의 황홀감에 침을 삼킨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그리 선의의 대화로 거래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현장 상황에 맞게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하는 롭은, ‘모든 희곡과 시 및 소설 등이 모방’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어 영국 아카데미에서의 7회 수상이라는 트로피를 앞세워 스스로 대견해하는 스티브에게, 아주 공식적인 말투로 결국 “넌 피터 유스티노프의 재연에 해당한다”라고 엄숙히 평가절하한다. 어느새 대화는 ‘알렉산더 대왕’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사사하기 위해 구사했을 협박 멘트를 ‘말론 브란도’의 느리고 깊은 쇳소리를 특징으로 하는 조폭 버전으로 수행된다. 다시 이 위협적인 말투는 <헨리 8세>(2013)의 위엄을 전하는 ‘레이 윈스턴’의 목소리를 찾게 되며, 어린 아내 <천일의 앤>(앤 볼린)의 목을 치도록 내리는 명령으로 읊조려진다.

 이들의 리듬 없는 랩 배틀은 이제 6, 70년대 할리우드로 향한다. 당시 가장 선명한 스크린 아이콘이었던 ‘더스틴 호프만’에 각광이 주어지니, 우리의 더스틴이 <졸업>(1967)에서 미시스 로빈슨에게 유혹을 당하는 상황, <마라톤 맨>(1976)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이빨 고문을 당하는 상황,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에서 '존 보이트'와 티격태격하고 <투시>(1983)에서 교태스러운 여성이 당당한 체하는 상황 등이 작은 탁자 위 정갈히 놓인 런치 디쉬들을 넘어 숨막히는 속도로 오간다. 이 긴 연상 라인을 타고 다소 절제 없이 확산하는 스크린의 추억거리들을 주로 ‘롭 브라이든’이 성대모사로 주도하면서 ‘스티브 쿠건’의 점잖은 나르시즘을 우아하게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동안 우리의 스티브는 이를 여유롭게 인정하거나 가볍게 반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롭의 무연민과 무동조의 드라이한 수다와 웃음이 스티브의 느긋하고 자신만만한 미소와 ‘그리 잘 안 어울리며’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양상이, 관객에게 긴장감을 잃지 않는 유머로 시종 다가온다.

 이 콤비의 개그에 음악적 리듬이 동반되는 때도 있다. 바로 비경을 가로지르는 차 안에서의 ‘배틀’은 자주 ‘리듬 버전’으로 이루어지는데, 롭이 그 쉼 없어야 하는 입놀림을 ‘노래’에 바칠 때이다. 그리하여 롭은 그리스(Greece)에 왔으니, '프랭크 밸리'의 ‘그리스(Grease)’를 읊조리고, '비지스'의 ‘스테잉 얼라이브’를 흥얼대며 가상 상황 속 응급처치를 당하는 친구를 향해 ‘스티브 이스 다잉‘을 삽입한다. 비지스의 행진은 계속되어 ’트레지디‘가 제법 멋들어지게 소화되었는데, 문제는 '데미스 루소스'의 ’포에버 앤 에버‘의 드라마틱하게 정감 어린 고음 부분을 가성으로 소화한다고 서로를 흠집내다가 발생하는데, 결국 롭은 우스꽝스러운 고음의 가성을 적나라하게 들키고 만다. 다른 때에는, 반젤리스의 <불의 전차(1981)> 테마 중 웅장하고 서정적인 도입부를, 둘이 사이좋게 제법 성공적으로 ’아카펠라‘하기도 한다.

  <트립 투 그리스>는 삼천 년 전 그리스 역사여행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정작 한 세대 전 할리우드 대스타들과 그 시대 대중음악에 대한 오마주로 읽힌다. 호머의 난세 영웅에 대한 칭송과 그가 겪어낸 오디세이로부터의 교훈 대신에, 영화는 반세기 전 할리우드 공장의 산출물들에 대한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경쾌한 유머로 시대의 업적을 기리고 있었다. 마이클 윈터바텀은 잉글랜드, 이태리, 스페인에 이어 이제 그리스를 끝으로 이 유럽 명승지의 ‘알쓸신잡’식 스토리텔링을 마친다고 한다. 

 그동안 이 네 번의 우아한 식탁은, 그림엽서 같은 관광지 풍광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지역 기반의 예술 및 역사적 이야기들을 기본양념으로 하면서 대중예술 재료들을 현란하게 조리해낸 메뉴들을, 롭 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이 ‘부드러운 가학’의 수단으로 상호 간에 주고받던 과정에서 차려진 것이었다. 그동안 중동 지역 난민 문제의 생생한 부각(<인 디스 월드> 2002), 파격적 철저함의 사랑 탐구(<나인 송즈> 2004), 치열한 인권침해의 고발(<관타나모로 가는 길> 2006), 일상의 소중함의 예리한 환기(<에브리데이> 2013) 등의 다채로운 영화 이력으로 대중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이 전국구의 영상작가가, 이 고급스런 지적 미식 체험 시리즈를 앞으로 어떤 신선한 서비스로 대체할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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