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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2020) - 크리스토스 니코우 / 글. 나란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1-06-03 313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
<애플> (2020) - 감독 크리스토스 니코우


기억상실 유행병과 시




 
 한 남자가 벽에 이마를 들이박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스 남자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남자는 버스에서 기억을 잃었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간다. 병원엔 그런 환자가 많다. 기억상실도 유행병인가.

 무연고 기억상실증 환자 남자는 정신과 의사에게서 ‘인생 배우기’ 프로젝트를 제안받는다. 준비물은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사진첩 앨범 그리고 녹음된 카세트 테잎. 미션을 수행하고 그 즉시 사진을 찍어서 앨범에 순서대로 끼워 넣어야 한다. 자전거 타기, 수영장에서 다이빙하기, 클럽에서 여자와 춤추기 등등.

 영화도 남자처럼 기억을 잃는다. 중요한 대목에서 화면은 거세되고 남자를 숨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도 살아있는 환자다. 영화는 또한 열린 사고를 환영하는 눈치다. 남자가 느끼는 감정을 가늠하기 어렵다. 과묵한 미션 수행자를 지켜보는 열린 해석들이 있다.

 남자는 확실히 사과는 맛있다. ‘빨강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우리도 사과가 맛있다. 이웃집 개를 알아보고도 이웃집 사람은 피한다. 사과가 기억력에 좋다는 말을 들은 후에는 사과 대신 오렌지만 잔뜩 산다. 이쯤 되면 들킨 거 아닌가 싶다. 기억 못하는 걸 유지하고 싶은 거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다. 앗! 트위스트 춤도 기가 막히게 춘다. ‘잊지 못할 사랑의 트위스트’ 우리도 사랑한다 트위스트. 잊지 못한 트위스트….

미션이 어려워지면서 남자는 불량 학생이 된다. 댄스클럽 데이트 후의 화장실 그리고 여자 안나, 장례식 참석 후 유가족 만남... ‘미션 중 행방불명’이 된다. 영화는 설명을 포기하고 막다른 골목에 우리를 갖다 놓는다. 영화의 수법 덕분에 내가 원치 않는 환자가 된다. 나에겐 여자가 있었다. 나의 식탁엔 마르고 상한 사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애플>은 그리스의 문제적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를 시작으로 14년간 8개의 작품에서 조감독을 해온, 37세 크리스토스 니코우의 첫 장편 영화이다. 자신은 16살부터 시나리오를 써왔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떠돌던 생각, 기억과 상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그 재료에 맞는 수법의 영화를 8년에 걸쳐 공을 들여 완성한 작퓸이 <애플>인 셈이다. 베니스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비극의 나라 그리스에서 또 한 명의 어려운 각본 감독이 탄생했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벌써 핑크빛이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만난 케이트 블란쳇이 제작한다고…. 다음 작품은 영어로 된 영화가 묵직하게 자리 잡을 것 같다. 

늘 두 번째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더 진짜 자신일 것 같다. 영화 <애플> 덕분에 김혜순 시인의 <잘 익은 사과>가 떠올랐다. 더불어 시인 이상도….


- 관객동아리 씨네몽, 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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