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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1994) - 감독 왕가위 / 글. 삐삐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1-03-16 490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
 <중경삼림> (1994) / 왕가위




 California Dreamin' 이 여전히 귀에 쟁쟁하다. 영화가 상영되었던 1994년, 나는 연년생 두 아이의 육아 시기였다. 눈과 손이 아이들에게 묶여 발과 마음이 이 영화를 향하진 못했어도 귀는 열려 있었던가 보다. 영화관에 음악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나의 온몸의 세포가 어느 쪽으론가 열리는 걸 느꼈다.

 지금의 내게 이 영화는 사랑의 영화가 아니라 이별의 영화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지만, 이별의 완성은 만남의 준비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대사들이다. 좀 유치하면 어떤가, 사랑인데.

  “실연으로 낙담에 빠질 때가 있다. 가슴이 아프면 난 조깅을 한다. 조깅을 하면 몸속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수건이 울면 기분이 좋아진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역시 감정이 풍부한 수건이다”
  “이 방이 점점 감정이 생겨난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 사람은 휴지로 끝나지만, 방은 일이 많아진다.”
  “안 온 게 아니다. 장소를 착각한 것뿐이었다. 서로 다른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15시간 거리인데 지금 그곳은 오전 11시다. 오후 8시가 되면 약속을 기억해 낼까? 그녀가 남긴 편지를 난 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 일이다. 그녀는 여기에 안 온 것이 아니다. 단지 캘리포니아에 있을 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의 양이나 정서 또는 스토리의 측면에서 대칭적이지 않은 것 또한 묘한 매력으로 남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너무 소심하게 변해 버렸다. 외출할 때면 항상 우비와 선글라스를 낀다. 비가 언제 올지, 언제 화창한 날이 될지 모르니까.”라며 영화 내내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마약 밀매상(임청하) 역할의 비중은 다소 아쉬웠다. 

  ‘왕가위’만의 유머 코드가 사랑스럽다. 역시 그 시절 홍콩 영화는 감성만으로도 충분하다. 대본 없이 작업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이제 막 사랑을 감각하는 페이와 이별을 통과하고 있는 경찰 663번의 감정이 미끄러지는 순간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연출하고 있다. 지금 보아도 세련된 방식이다. 

 빛나는 터널을 빠르게 지나온 느낌이랄까, 인생의 당도를 회복하고 싶은 당신에게 권한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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