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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정> (2018) - 박혜령 / 글. 히피마마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0-11-01 365

[ 관객동아리 씨네몽회원 개봉작 리뷰 ]

 <밥정> (2018) / 박혜령

 


 

 

투우욱, 투두둑! 늦여름 소낙비가 내리려 할 즈음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마냥 소리 나지 않는 눈물방울이 묵직한 솥단지를 쓰다듬는 투박한 손길 사이 어디께로 떨어진다. 담담히도 흘러나와 더 서러워지지 못할 것 같은 노랫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까지. 여기저기 들먹거릴 어깨를 누르고 숨을 고르며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들 눈가도 가슴도 이미 촉촉하다. 어머니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마음 한 칸 그리움과 죄스러움을 간직하게 하는 세 글자니까. 그런 무게를 지닌 이름을 셋이나 가슴에 담아야 했던 영화 속 주인공의 방랑길이 어찌 쉬이 멈출 수 있었을까!

 

열한 살, 생모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상처가 될 어린 나이. 강변에 앉아 돌멩이 하나 들고 온종일 흙을 뒤적이던 소년은 결국 여기저기 막연한 그리움의 실체를 찾아 길 위에 선다. 이 세상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어 모든 게 음식 재료가 되었던 사람. 요리사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그냥 사람이 좋아서, 혹여나 이 사람이 제어머니의 혈육일까 싶어 길 위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며 방랑 식객이라 불리게 된 사람 임지호! 엄마란 무엇인가 싶어 그리움을 찾아 나섰다는 걸 누가 알겠노. 나밖에 모르지. 그분들의 눈물 값을 해야 한다고. 그게 우리 어머니의 가르침이었기에. 온전하게 나를 던지고 했거든 이라며 북받쳐 말하던 그. 가슴으로 기른 어미의 정을 외면했던 죄스러움이었을까! 그의 그 숱한 그리움의 실체들에 이끌려 더 멈출 수 없었을지 모를 임셰프의 발길과 칼질은 어느새 그를 세계가 주목하고 존경하는 자리까지 이르게 하였지만, 그의 그리움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나 보다.

 

지리산 시골집 툇마루 거울 안으로 다리 힘 풀린 영감님이 한 줌이나 되어 보일 나뭇가지 뭉텅이를 안고 힘겹게 올라선다. 그 옆으로 힘차고 빠른 칼질 소리가 들린다. 평생 동네 밖 한 번 안 나가고 영감 곁에서 봄마다 인삼국이라 불리는 냉잇국을 끓였을 임셰프의 세 번째 어머니, 때때로 아들처럼 찾아와 고맙기 그지없어 어딜 봐도 다 좋고 뭔 소리를 해도 웃음이 나니 좋소하는 어머니. 임셰프가 세상이 다 아는 유명 셰프라는 것은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이 씻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잘 씻네 하면서도 싹싹 비벼 씻으라고 훈수 두는 88세 요리사 지리산 어머니. 그 어머니가 차려준 짠 냉잇국에 밥 말아 한 그릇 술술 넘기며 뚝딱 비운 그 어머니의 밥상이 어쩜 그에게 가장 편하고 따뜻한 밥상이었을 것만 같아 괜스레 내 목이 메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뚝딱거리는 칼질이 어찌 경쾌하지 않으리. 그러나 그 경쾌함도 잠시. 지리산 어머니의 부재를 알리는 소식은 주름진 얼굴들을 만날 때마다 아름다워요.’라고 해맑은 소년처럼 웃으며 진심 되게 말하던 그의 얼굴은 웃음기가 걷히고 밭은 입술에 담배를 물게 한다.

 

멀미를 하셔서 동네 밖을 나가보신 적이 없었던 지리산 어머니를 위해 그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비바람 치는 파도에 부딪히며 비 젖은 나뭇가지 끝까지 위태롭게 다가가 얻은 재료들을 구해 지리산 어머니와 걸터앉아 손을 비벼주고 얼굴을 만져주던 기억들이 담긴 공간, 툇마루 한가득 제상을 차린다.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신을 다해 차린 툇마루 제상을 향해 절을 올리고 비에 젖은 대나무 평상에 이마를 맞대고 한참이나 고개를 못 든다. 실체를 알 수 없던 지난한 그리움을 쉬이 보내기 힘들기라도 한 듯.

 

지팡이 두 개 나란히 놓여있던 툇마루가 적요하던 그곳에 한참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빽빽이 차린 음식들을 보며 이 음식을 다한 걸 보고 감사하다며 결국 오열하는 지리산 어머니 딸의 곡소리가 한참 간다. 어쩜 잠깐잠깐 눈 붙일 시간도 아끼며 108개의 음식을 만들어 제상을 차려냈던 그는 그저 한 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65억 인구들 틈에서 무슨 인연이 닿아 한 밥상에 앉아 밥을 먹을 거나 그저 고맙소 하던 웃음 선한 촌로들의 손을 마주 잡고 등을 쓰다듬고 서로를 안으며 어느새 그리움의 실체를 보듬고 정을 나누는 음식을 짓는 요리가로 거듭난 건 아닐까.

 

세 어머니를 보낸 임셰프는 각자의 그리움을 보내고 남겨진 사람들과 더불어 밥을 먹는다. 열린 시골 방문 안에 사람들이 정을 나눈다. 툇마루에 걸려있던 거울 속에 지리산 자락 그 곱디곱게 물든 단풍이 그득히 담긴다. 한 폭의 그림 같다.

 

 

- . 영화동아리 씨네몽 히피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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