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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음에 관하여> (2019) - 로이 앤더슨/ 글. 조현철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2-01-19 169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끝없음에 관하여> (2019) - 감독 로이 앤더슨


회색톤으로 우아하게 채색된 인간 고독과 우울의 자화상




 <끝없음에 관하여>는 언뜻 동영상이 아니고, 책이나 그림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장면 하나하나가 일일이 넘겨야 하는 책장 혹은 골똘히 응시해야 하는 회화작품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결코 움직이는 적이 없다. 30여 개 쇼트를 채우는 사각의 프레임 각각이 원형을 유지한 채, 카메라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인물들의 동작과 소리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 어떤 클로즈업도 트래킹도 허용되지 않는 이 넓은 캔버스는, 카메라의 이동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역동성을 포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영화는 주의 고조와 감정 유발이라는 영화 특유의 전략이 주는 혜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더욱이 영화는 기승전결의 구조로 완성되는 내러티브의 사용권도 반납하였다. 그에 따라, 인물과 사건의 변화와 발전에 따른 긴장 형성과 주의 집중의 마법으로, 관객을 강력히 사로잡으려는 모든 다른 극영화의 시도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끝없음에 관하여>는 여전히 영화인가?’ 물론이다, 그것도 80분에 가까운 장편 극영화이다. 각각의 장면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연출된 상황과 사건으로 채워진다. 이야기의 표면적 내용 면에서는 각 장면이 개별화 파편화되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부분과 요소들은 공통의 주제에 대한 강력한 수렴성을 유지하며, 한땀 한땀 전체의 그림을 수놓고 있다. 이 재료 중 인상적인 부분을 몇 가지만 추출해보자. 복음을 믿지 못하는 가톨릭 사제는 정신과 의사를 마감 시간에 찾아가 “믿음을 잃었는데, 어떻게 해야지요?”를 반복하여 외치는데, 의사의 대답은 “(귀가) 버스를 놓치면 안 되겠다.”가 된다. 수산 시장의 한복판에서 옆에 있는 여성의 뺨을 내리치며 중년남성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알지?”라고 외칠 때, 여성의 대답은 “알지, 알지요.”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를 연신 외쳐대며 버스 앞자리에 앉아 훌쩍이는 사내에 대해, 짜증스러워하는 다른 승객의 반응은 “그런 짓은 집에서 혼자서나 하시오.”가 된다. “고요한 밤”이 거룩하게 울리는 식당의 창밖으로 소담하게 흰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환상적이네요!”라고 누군가 반복하여 탄성을 내지를 때, 식당 안 주변에 같이 서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신가 보군요.”가 된다. 몇 년 만에 만나게 된 지인이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나보다 못한 그 친구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탄하는 남편의 말에 대한, 아내의 반응은 “당신도 훌륭해요. 에펠탑도 가보고, 직접 걸었잖아요. 관절도 안 좋은데요”가 된다.

 이 모든 아이러니와 유머 그리고 풍자는 사실 평화롭고 단조로운, ‘늙은 사회’의 잔잔한 일상 속에 개개인이 겪어내어야 하는 고독과 우울의 증상들을 겨냥하고 있다. 개인들 사이 ‘단절의 구조’ 속에서 항시 미완에 이르는 소통, 결국 조우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고뇌’를, 영화는 관객마다 각성하도록 넌지시 요청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 끝없이 펼쳐진 구릉과 구름을 배경으로 이어진 긴 도로 위에 갑작스레 정차하게 된 차량의 수리를 위해, 한 개인이 외롭게 바둥대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 부여된 그 불완정성의 ‘끝없음’에 관하여 상징하는 바가 상당하게 되었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조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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