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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사람들> (2019) - 버르너바시 토트 / 글. 김진실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전주영화제작소 2021-02-17 553

[ 관객동아리 ‘씨네몽’ 회원 개봉작 리뷰 ]
 <살아남은 사람들> (2019) / 버르너바시 토트



허울뿐인 위로보다 '공감'이 먼저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끌어안은, <살아남은 사람들>
 


 완벽하게,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깊이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건이 아닌 그 사건을 견뎌온 그들의 숨겨진 얼굴과 흔들리는 몸을 바라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홀로코스트로 두 아들과 아내를 떠나보낸 의사 알도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한순간에 고아가 된 소녀 클라라가 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룬다. 클라라와 알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미 그들은 아픈 과거를 갖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란 결과다. 행방불명된 부모에게 매일 편지를 쓰는 클라라와 수시로 떨리는 손을 보며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는 알도에게서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이들의 현재에 드리운 어둠과 묘한 긴장감뿐이다. 따라서, 알도에게 집착하는 클라라를, '안정을 원하는 가여운 소녀'가 아니라 '아빠뻘 되는 아저씨에게 여자로 접근하는 소녀'로 보는 건, 불편하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 돼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에서 정말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몇 명뿐이고, 관객을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은 살아남는 것에 큰 의미부여 하지 않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가십거리와 오락거리, 그리고 각자의 거창한 미래에 집중한다. 현재 자신들이 통과하고 있는 전쟁의 후유증과 트라우마는 지나가는 열차와 다를 바가 없다. 클라라가 학교 선생님들에게 전부 낙제생으로 낙인찍힌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를 부정하고, 알도에게서 아빠의 냄새를 맡고, 그의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일도 클라라에겐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처럼. 그러나, 이웃의 눈엔 그저 부정한 사랑일 뿐이었다.

 

 알도와 클라라의 관계는 클라라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말하는 클라라의 불안을 잠재우는 일은 함께 사는 고모할머니가 아닌 고작, 한 번 본 의사 알도다. 소녀는 아빠의 품이 간절했을 뿐이고, 사회 구성원으로 크길 거부하는 일은 16살에겐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클라라의 리스트엔 수업 거부와 낙제는 고려대상으로 들어가 있지도 않다. 딱 하나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자신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런데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직하게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만족스러운 클라라를 잡아주는 알도의 존재는 관객의 불안까지 능숙하게 컨트롤한다. 그는 영화 내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늘 '난 괜찮다'는 거짓말이 익숙한 알도. 클라라는 그의 말이 전부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지만, 이를 따지지 않는다. 알도에게 거짓말은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원동력이었다. 죽은 아내와 아들들이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다는 믿음으로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만큼 대단한 삶이 있을까. '살아남는 일'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슬픔을 분출하는 순간, 다시 빨아들일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있기에 가능하다.

 

 가족을 한순간에 빼앗기고 잃어버린 아픔. 클라라는 입 밖으로 꺼내는 방법을 택했지만, 알도는 침묵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스펀지처럼 서로를 받아들였고 공감했으며, 마침내 가족이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섬세한 연출과 가슴을 찌르는 송곳 같은 미장센이 폭발하는 장면 역시, 그 부분이다. 알도의 고통을 그의 가족사진 앨범만으로 깨닫는 클라라를 담은 한 장면. 알도가 남긴 편지 속 열쇠로 가족사진 앨범을 꺼내 본 클라라는 흑백 사진에 담긴 그의 환한 웃음과 그의 어른 두 아들과 아내를 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소녀에게 한 줄기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카펫을 비춘다. 앨범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그대로 카펫으로 엎어지는 클라라. 그녀의 감은 두 눈에 햇빛이 드리운다. 어둠도, 그림자도 아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밝고 따뜻한 빛이 클라라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그녀의 가족에게로 인도한다. 그 짧은 순간, 클라라는 엄마와 아빠, 어린 동생을 만난다. 알도의 고통은 곧 소녀의 고통이었고, 소녀의 고통은 곧 그녀와 같은 수많은 이들의 고통이었다.

 

 알도의 가족사진과 클라라의 눈물과 햇살만으로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힘. 3년 후, 스탈린의 죽음과 함께 완전한 가족이 된 이들이 술잔을 부딪치는 마지막 장면. 매번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해피엔딩을 너무나 조심스럽고 어렵게 완성한 <살아남은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은 관객의 눈이 아닌 마음을 먼저 사로잡았다. 망설임 없이 꽉 끌어안아 줬다. 침묵을 가장해 끊임없이 의심했던, 완전히 공감하지 못해 그들의 주위를 겉도는 사람들까지 전부 다.

 


- 관객동아리 씨네몽, 김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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